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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07. 08. 18 (03:53)
subject : 발레 작품
name    : chacottkorea visit : 7064
발레 작품





La Bayadere 라 바야데르

프티파 안무로 1877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4막.음악 밍쿠스

제목은 '인도의 무희'라는 뜻의 프랑스어.젊은 무사 솔라르아 무희 니키아의 사랑이 줄거리

동방적인 정취가 강한 환상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며 '망령들의 왕국'으로 불리는 군무 장면이

특히 아름다움.1983년부터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예술감독을 맡아 말년의 정열을 바쳤던

루돌프 누레예프 (Rudolf Nureyev 1938-1993) 는 1992년 10월 '라 바야데르' 공연을

유작으로 남기고 에이즈로 사망하였다.





La Sylphide 라 실피드

필리포 탈리오니 안무로 1832년 파리에서 초연.2막.음악 슈네이트죄퍼.에피라는 시골처녀와

결혼식을 앞둔 스코틀랜드 청년 제임스는, 결혼식 날 공기의 요정 실피드가 눈앞에 나타나자

한눈에 실피드를 사랑하게 돼 실피드와 도망을 친다.제임스는 실피드가 언젠가 날아가 버릴

것이 두려운 나머지 무당에게서 받은 마술 스카프를 실피드의 허리에 묶는다.

실피드는 그로 인해 날개가 떨어져 죽는다.한편 에피는 다른 청년과 결혼, 제임스는 결국

천상과 지상의 연인을 다 잃게 된다는 줄거리.

마리 탈리오니 (Marie Taglioni 1804-1884) 가 1832년 '라 실피드'에서 화가이던 '외젠 라미'가

디자인한 무릎과 발목 중간 길이의 아름다운 종 모양의 스커트인 '로맨틱 튀튀' 를 입고 나와

발레 의상에 혁신을 가져 왔으며 '라 실피드' 이후 약 백 년간 이 치마는 발레리나의 공식 복장이

되다시피 했다. 그 뒤에 등장한 것이 접시꽃 모양같기도 하고 마치 뒤집어 놓은 우산같기도 한

지금의 발레 의상의 대명사인 '클래식 튀튀' 이다.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다리와 현란한 테크닉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또한 과시할 수 있는 의상이기에 발레리나의 발전을 촉진했다.

발레는 처음에는 남성의 예술이었다.발레를 궁중의 '연희'에서 '예술'로 격상시킨것도

최초의 직업 무용수도 남성이었으며 화려한 테크닉을 개발하고 발레에 극적인 예술성을 부과한

것도 남성이었으며, 대중의 관심을 처음 이끌어낸 것 또한 남성이었다.

그런 남성의 예술이었던 발레에서 되려 남성이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바로

'마리 탈리오니'때문인데, 그가 1832년 '라 실피드'에서 마치 산들바람에 실려 나온 듯 발끝으로

미끄러져 무대 위에 등장한 순간부터 발레는 더 이상의 남성의 춤이 아닌 여성의 예술이 되고

말았기에 하는 말이다.당시 전 유럽을 휩쓸던 낭만주의의 시대가 발레에서도 그렇게 개막되었다.

발끝으로 서는 '까치발'이 언제 처음 시도됐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마리 탈리오니' 이전의 '파니 비아스'등이 1820년대에 이미 발끝으로 섰다는 기록과 석판화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탈리오니'가 최초로 발끝으로 선 발레리나인지는 분명하지가 않지만

그가 1832년 '라 실피드'에서 발끝으로 무대에 등장,마치 천상의 요정처럼 무대 위를 누비며

낭만주의 시대의 개화를 알렸고 '탈리오니'로 인해 까치발이 완벽한 예술적 가치를 획득했다는

평가에는 이론이 없다.오늘날 '발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되는 발끝으로 서는 푸앵트 기법,

잠자리 날개같이 아름다운 발레 의상 '튀튀'등이 다 '마리 탈리오니'를 시작으로 이 시기에

개발됐으며, 이 모든 요소들은 발레리나들의 아름다움을 한껏 부각시키고 발레를 여성의 전유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Daphnis and Chloe 다프니와 클로에

포킨( Mikhail Fokine 1880-1942 )안무로 1912년 파리에서 발레 뤼스가 초연.음악 라벨.

그리스 신화 속 젊은 양치기 다프니와 그의 연인 클로에의 사랑이 주제





Don Quixote 돈키호테

프티파 안무로 1869년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서막과 4막 8장.음악 밍쿠스

오늘날 널리 공연되고 있는 것은 고르스키가 3막 7장으로 재구성, 1940년 자하로프가 수정한 버전.

세르반테스의 소설에서 모티프를 따왔을 뿐 주인공은 돈키호테가 아니라 마을의 젊은 연인,

키트리와 바질이며 두 사람의 결혼을 둘러싼 우여곡절이 중심 내용. 스페인 춤의 전통과

발레 테크닉이 결합한 정열적이고 화려한 춤이 볼거리





La Esmeralda 라 에스메랄다

페로 안무로 1844년 런던에서 초연.3막 5장.음악 푸니.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를 원작으로

한 발레.1886년 프티파의 개작 당시 드리고가 몇 가지 새 곡을 삽입했으며, 그 중에 오늘날까지

발췌 공연되고 있는 '다이애나와 악테온' 파 드 되도 포함돼 있음. 엘슬러가 직접 재구성해

공연한 것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음





Raymonda 레이몬다

프티파 안무로 1898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3막 4장.음악 글라주노프

레이몬다는 십자군 원정에 나간 약혼자 장 드 브리앙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사라센의 백작

아브데라흐만이 그녀에게 눈독을 들인다.드디어 브리앙은 돌아오고 두 사람은 결투를 벌인다.

마침내 레이몬다와 브리앙의 결혼식이 열리는데...프리파의 마지막 작품이며, 망명 후 루돌프

누레예프가 서방에 최초로 소개한 러시아 전막 발레.1964년 로열발레단을 위해 안무했으며

새로운 해석이 가미돼 현재도 프티파판과 누레예프판으로 나뉘어 공연됨.

결혼식 장면의 헝가리안 디베르티스망이 유명하다





L'Apres Midid'un Faune 목신의 오후

니진스키 안무로 1912년 발레 뤼스가 파리에서 초연.음악 드뷔시.

디아길레프의 권유로 니진스키가 발표한 그의 첫 안무 작품이며 안무가로서의 니진스키의

천재성을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된 작품이다.고전발레의 규범을 무시한 파격적인 동작과 에로틱한

내용 등으로 초연 당시 파문을 일으켰으나, 오늘날 20세기 발레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한 작품으로 꼽힘.특히 목신(牧神)인 Pan 판으로 분한 니진스키가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등장해, 님프가 남기고 간 스카프와 벌인 의사(擬似) 정사 장면은 관객들에게 엄청한 충격을 던졌다.

무대 위를 오가는 니진스키의 춤은 마치 안개 속을 항해하는 배를 연상시킬 만큼 예전의 클래식

발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것이었음에도, 정작 관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이같은 새로운 시도들보다 선정성 문제였다.목신이 천진한 님프들을 유혹하는 내용이 논란의

대상이었는데, 특히 마지막의 님프들이 두고 간 스카프와의 의사 정사행위를 벌이는 장면은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





The Fountain of Bakhchisarai 바흐치사라이의 샘

자하로프 안무로 1934년 레닌그라드에서 초연.4막.음악 아사피에프

푸시킨의 동명 시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엇갈린 사랑과 질투의 비극을 다룸





Romeo and Juliet 로미오와 줄리엣

라브로프스키 안무로 1940년 레닌그라드 키로프 극장에서 초연.3막.음악 프로코피에프

셰익스피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함. 여러 안무가들이 도전했으며 그 중 1958년 베니스에서 첫 선을

보인 존 크랑코의 안무가 독특함. 최근작으로는 프랑크푸르트 발레단의 존 노이마이어와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장 크리스토퍼 마이요 안무가 돋보임

공연중엔 무용수들의 부상이나 사고가 적지 않은데, 1976년 2월 7일 이탈리아 팔레르모의 폴리테마

극장에서 열린 프로코피에프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당시 '카를라 프라치'가 줄리엣

'데니스 웨인'이 로미오로 호흡을 맞춘 이날 공연에서 웨인의 칼이 티볼트역을 맡은

로베르토 파실라의 다리를 찔러 버린 것이다.긴장한 탓인지 로미오가 하도 격력하게 달려드는

바람에 다른 출연진들까지 겁을 집어먹을 정도였다고.연골이 손상되고 뼈가 부러졌다지만

무대 위에서 사고로 죽기도 하는 터라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다.







Ballet Comique de la Reine 발레 코미크 드 라 렌

보주아외의 총지휘로 1581년 파리 루브르 궁에서 초연.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일종의 여흥으로

최초의 발레작품으로 일컬어짐

발레의 기원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궁정 발레에서 찾는 것이 보통이다.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어디까지나 왕족과 귀족들의 여흥용 사교춤이었고, 발레가 지금과 같이 극장예술의 형태로

나아가는 토대를 갖춘 것은 프랑스로 전파된 이후였다.

프랑스에 발레가 전해진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명문인 메디치가 출신의

카테리나 데 메디치 (Caterina de' Medici 1519-1589) 가 프랑스 왕실로 시집간 것이 계기였다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앙리 2세의 왕비가 된 카테리나는 이국에서의 외로움과 향수를 달래기 위해

조국인 이탈리아 궁중에서 즐기던 발레를 소개했는데 이것이 프랑스에 발레가 전파된 계기가

된 것이다.발레의 기원으로 꼽히는 '발레 코미크 드 라 렌'을 제작한 '발타자르 드 보주아외'는

바로 카테리나가 시집올 때 이탈리아에서 데려간 신하였다





Ballet de la Nuit 밤의 발레

몰리에르, 륄리 등의 공동 안무로 1653년 파리의 프티 부르봉에서 초연된 궁정발레.음악 캄베포르

해질녘에 시작돼 장장 열세 시간 동안 공연된 작품으로, 루이 14세가 직접 출연해 '태양왕'이라는

애칭을 갖게 되었다. 그가 15세에 출연했던 작품이며 이 발레는 루이 14세를 중심으로 세계가

회전한다는 다소 '용비어천가'식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서양 춤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발레 스타는 프랑스의 태양와 루이 14세(Louis X IV1638-1715)다

발레의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린 발레 중흥의 일등 공신이기도 한 루이 14세의 발레 사랑은

당시 프랑스에서 루이 14세가 영토 넓히는 것만큼이나 발레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유별났다.당시 황제의 시종들 중 가장 많은 급료를 받은 사람이 최초의 무용교사이자 루이 14세의

선생이었던 피에르 보샹(Pierre Beauchamps 1636-1705)이었다는 사실도 그런 예의 하나이다

보샹은 바로 오늘날가지도 준수되고 있는 발레의 다섯 가지 기본 발동작을 정리한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발레학교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왕립 무용 아카데미를 1661년에 설립했다.

이 아카데미는 발레가 지배계급의 여흥에서 전문가의 예술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황제는 이어1669년에 왕립 음악 아카데미를 설립했고 1672년에는 두 학교를 왕립 음악 및 무용

아카데미로 통합하였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파리 오페라 발레학교' 및 '발레단' 의 모태가 되었다.





Swan Lake 백조의 호수

벤젤 라이징거 (Wenzel Reisinger 1828-1892) 는 1873년부터 1878년까지 러시아 볼쇼이

극장의 발레 마스터를 역임하였는데 그의 안무로 1877년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오늘날 공연되는 작품들은 1895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된

프티파와 이바노프의 수정판에 기초하고 있다. 4막. 음악 차이코프스키. 악마의 저주로 백조가 된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드 왕자는 첫눈에 사랑을 느끼지만 왕자가 악마의 속임수에 빠져 악마의 딸 오딜에게 사랑의 맹세를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의 사랑은 물거품이 된다는 줄거리.

클래식 발레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의 하나로 발레의 교과서와 같은 명작이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발레음악중의 하나로 꼽히는 '백조의 호수'는

오늘날 음악 자체만으로도 널리 연주되는 발레음악의 백미다.하지만 1877년 볼쇼이 극장 초연

당시 안무를 맡았던 '벤젤 라이징거'에 의해 음악이 도무지 엉망진창에 도저히 춤출수 없는 곡

이라는 평을 들으며 삼분의 이가량이 뭉텅 잘려져 버렸었다.명곡을 몰라본 탓인지 당신 공연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이로 인해 발레의 영원한 고전으로 꼽히는 걸작이 사장될 위기에 처했으나

차이코프스키가 사망한 지 2년 뒤인 1895년 불세출의 안무가 '마리우스 프리타'와'레프 이바노프'

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대부분 되살려 '백조의 호수'를

다시 올렸고 환골탈태한 '백조의 호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오늘날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는

'백조의 호수'는 바로 이 버전을 따른 것이다.발레와 음악의 관계를 생각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 조지 발란신 (George Balanchine 1904-1983)은 차이코프스키가 1877년 볼쇼이의

'백조의 호수'초연 당시 네번째 공연 날을 앞두고 급히 작곡해서 추가한 것으로, 3막 중 오딜의

춤을 좀더 화려하게 부각시키려는 것이 목적으로 약 8분 길이의 음악을 작곡하였는데 오리지널

'백조의 호수'악보에는 실려 있지 않아 공연 뒤에 완전히 잊혀져 빛을 볼 수 없을뻔 했던 것을

1953년 발란신이 볼쇼이 극장 자료실에서 찾아내어 '차이코프스키 파 드 되'라는 독립된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백조의 호수'는 발레리나가 한 무대에서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를 동시에 보여주어야 한다.

한마디로 테크닉과 표현력이 두루 갖취지지 않은 발레리나는 도전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2막 호숫가 정경에서 지그프리드를 만난 백조가 공포에 떠는 몸직, 점차 사랑을 느끼는 두 사람의

우아하고 고전적인 아다주를 펼치다가 3막에서는 지그프리드를 유혹하는 오딜, 이른바

'팜므 파탈'(Femme Fatale)로 일순간에 변신해야 한다.사전 지식이 없는 관객들이 공연이 끝난 뒤

'백조와 흑조가 정말 같은 사람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발레리나로서는 대성공인 셈이다.

'백조의 호수'를 생각할때 빼놓을 수 없는 발레리나가 있다

'피에리나 레냐니'(Pierina Legnani 1828-1923)는 이탈리아 발레리나로서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프리마 발레리나였던 그녀는 눈부신 테크닉으로 대표적인 이탈리안 비르투오소이다.

그녀는 189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건너가 마리우스 프티파의 '신데렐라'에서 처음으로

서른두 번의 푸에테를 선보였고, 레냐니의 신기에 가까운 푸에테를 지켜본 프티파는 '백조의 호수' 3막의 유명한 흑조 파 드 되에 서른두 번의 푸에테를 집어넣은 것이다.

오늘날에도 팬들을 가장 열광시키는 흑조의 바리아시옹은 바로 레냐니 덕분에 탄생했던 것이다.

프티파의 '백조의 호수'에서 최초로 오데트와 오딜 역을 동시에 맡았던 발레리나이며

러시아 역사상 단 두명뿐인 '프리마 발레리나 아솔루타'중의 한 사람이다.

다른 또 한 명은 마틸다 크셰신스카 (Mathilda Kschessinska 1872-1971)이다.

백조의 호수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재해석 되어지고 새로운 안무를 시도해 나가고 있는데

클래식 발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데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매튜 번'은

'어드벤처스 인 모션 픽처스'라는 단체를 만들어 영국 런던 웨스트 엔드의 '새들러스 웰즈'

극장에서 1995년11월 '백조의 호수'를 초연했었는데 동성애적인 내용 때문에 게이들의

백조의 호수로 일컬어지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하지만 관객의 반응은 대단해 영국 주요

공연예술상을 휩쓸고 브로드웨이에도 진줄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데뷔작 '빌리 엘리어트'의 엔딩 장면을 장식하는, 그러니까 성장한 '빌리'

역으로 나온 무용수는 '애덤 쿠퍼'로 발군의 테크닉을 자랑하는 이 발레단의 최고의 스타이다.

백조의 호수는 최장 커튼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작품인데 그 주인공은 루돌프 누레예프와

그의 전설적인 파트너 마곳 폰테인(Margot Fonteyn 1919-1991)인데,

무려 여든아홉번의 커튼콜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진다. 1975년 런던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했을 때는 사십 분 동안이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Le Sacre du Printemps 봄의 제전

니진스키 안무로 1913년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2분.음악 스트라빈스키.

불협화음을 연상시키는 원시적 리듬과 생격하고 파격적인 움직임으로 초연 당시 폭동에

가까운 격렬한 반응에 직면했던 20세기 최고의 화제작.

젊은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고대의 의식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마사 그레이엄, 피나 바우슈 등

가장 많은 무용가들이 재안무에 도전할 정도로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초연 날 관객의 반응은 폭동에 가까웠다.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소음에 가깝게 들려졌고,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무용수들의 동작은 관객을 우롱하는 것으로 비쳐졌으며 마치 전쟁터같은

극장 분위기에 졸도한 무용수까지 있었다니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던 모양이다. 초연이 끝난 뒤

스트라빈스키, 니진스키, 디아길레프는 파리의 볼로뉴 숲에 모여 앉아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예전 니진스키가 안무한 '목신의 오후'의 여러가지 논란의 대상이 되고 갖가지 스캔들을 불러

일으키니 천부적인 흥행사 디아길레프는 대중의 관심을 흥행에 이용하기 위해 '목신의 오후'의

공연 횟수를 늘렸고.그 과 정에서 안무가 포킨의 신작'다프니와 클로에'를 단 2번의 공연으로

줄였는데 그로 인해 포킨은 화가 나서 발레단을 떠나고 안무가의로서의 포킨의 자리가 니진스키

에게로 넘어온것이다.니진스키의 전채성은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것 같다.'봄의 제전'에 비하면

'목신의 오후'는 맛보기에 불과했던 것이다.극장의 재정 후원자들은 다시 포킨을 불러 오라고

압력을 가했고 디아길레프는 결국 포킨을 찾아가지만 니진스키가 아예 없어진다면 돌아가겠다고

엄포를 놓는다.이를 전해 들은 니진스키는 신경과민 증상까지 보이며 남미 순회공연을 떠나게 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추종자인 한 여인과 결혼식을 올려 버린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디아길레프는 해고는 물론, 철저히 니진스키를 파괴한다.

강한 정신력을 갖을 수 없었던 니진스키는 춤을 출 수 없게 되자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점점

피해망상에 시달리게 되었다.결국 니진스키는 스물아홉의 나이에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었다.바슬라브 니진스키 (Vaslav Nijinsky 1889-1950)

러시아 발레리나.'무용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신화적인 발레리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와의

동성애는 니진스키의 삶과 예술을 파멸로 이끈 불행의 씨앗이었다.

저자 리처드 버클의 '니진스키'는 니진스키의 전기 중 가장 신빙성있는 저술로 평가된다니

좀 더 알고 싶다면 참고하도록 하자.





Firebird 불새

포킨 안무로 1910년 파리 오페라에서 초연.3장.음악 스트라빈스키.

러시아 색채가 짙은 드라마틱 발레.사냥에 나선 이반 왕자가 신비한 불새를 사로잡지만 불새가

애원하자 놓아준다.불새는 감사의 표시로 깃털을 하나 뽑아주는데, 훗날 위기에 처한 왕자가

이 깃털을 흔들자 불새가 다시 나타나 구해 준다는 내용





The Red Poppy 붉은 양귀비

라시칠린과 티호미로프 안무로 1927년 볼쇼이에서 초연.3막 8장.음악 길레어

192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리상푸'라는 악덕 자본가에게 유린당한 여주인공

'타오호아'가 혁명 지도자를 암살하려는 총탄을 대신 맞고 희생됨으로써 혁명의 초석이 된다는

줄거리.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 대표작 중 하나





The Dying Swan 빈사의 백조

포킨이 1905년 안무. 1907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 음악 생상스

포킨이 어느 날 집에서 친구의 반주에 맞춰 만돌린으로 생상스의 '백조'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때 파블로바가 찾아와 자신을 위한 솔로작품을 하나 안무해 달라고 부탁했다.

포킨은 '백조' 반주에 맞춰 즉흥적으로 파블로바가 추는 춤을 그대로 반영하여 소품을 만들었다.

이렇듯 파블로바 없는 '빈사의 백조'는 생각할 수 없으며 자신들도 예술가이면서 아집을

내세우지 않고 한 발레리나의 재능을 이끌어내고 존중해 준 '포킨'과 '생상스'역시 명작을 만든

주인공들임에 틀림없다. 워낙 유명하다 보니 대작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공연 시간이 2 분

남짓한 초미니 작품이다.한마리 백조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날아 보려고 애쓰다 날개를 서서히

접은 채 머리를 떨어뜨리고 죽어 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 전부이며 아무 장치나 소품도 없이

발레리나 혼자서 그저 춤출 뿐이지만 '빈사의 백조'는 발레의 에센스를 응축한 한편의 서정시

라고 해도 좋을 작품이다.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 1881-1931)는 러시아 발레리나이며 상트 페테르부르크 태생으로

황실발레학교를 거쳐 1899년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하여 '빈사의 백조','백조의 호수','지젤'

등에서 시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명연기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레리나로 기록된다.

발레 뤼스에서 활동했으며 후에 자신의 발레단을 만들어 15년 동안 세계를 누비며 사천여 회의

공연을 통해 발레를 세계인의 마음에 심은 업적은 과히 기념비적이다.

파블로바는 백조 튀튀를 2번 이상 그대로 입은 적이 없을만큼 완벽한 의상을 고집했는데,

파블로바가 생전에 사천여 회의 왕성한 공연을 했고 대부분의 경우 '빈사의 백조'를 추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입은 백조 튀튀가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이 가는가. 파블로바는 튀튀를 만들기 위해

매년 미국에서 수천 야드의 '탈러턴 (얇은 모슬린)'을 수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파블로바의 의상은 일체 집에서 만들어졌는데, 바느질은 그의 충실한 시종이었던 '만야'가 맡았다.

발레의 전설이었던 안나 파블로바가 1931년 1월 23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한 호텔에서 조용히

세상을 등지자 '만야'는 영국 로열발레의 '백조의 호수'에 '마곳 폰테인' 이 처음으로 출연하게

됐을때 백조 의상을 만들어 주었고, 당시 만야가 만든 의상은 아직까지도 이 발레단의 튀튀 제작

모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The Stone Flower 석화

라브로프스키 안무로 1945년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3막 8장.음악 프로코피에프

초연은 실패했으나 1957년 그리고로비치 안무로 주목을 받기 시작.우랄 지방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돌의 신비와 매력을 완벽하게 살리려는 석공 '다닐라'의 운명을 소재로 한 작품





Spartacus 스파르타쿠스

야콥슨의 안무로 1956년 레닌그라드에서 초연.4막 9장.음악 하차투리안

오늘날에는 1968년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볼쇼이판이 널리 공연됨.로마제국 시대의 노예반란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역동적인 남성 군무가 유명하다.





Cinderella 신데렐라

자하로프 안무로 1945년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3막 7장.음악 프로코피에프

페로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발레로, 연극성이 강한 작품이며 1893년 공연한 마리우스 프티파의

'신데렐라'에서 레냐니가 처음으로 서른두 번의 푸에테를 선보여 발레 팬들을 놀라게 했었다.





Le Pavillon d'Armide 아르미드의 관

포킨 안무로 1907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1막3장.음악 체레프닌

황실발레학교 학생들의 졸업작품으로 안무했으나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둠





Les Facheux 악동들

원래 몰리에르가 만든 코미디 발레였으나 니진스키가 1924년 재안무.1막.음악 오릭

브라크가 무대미술을 맡음.마임의 비중이 압도적인 독특한 작품이었으나 흥행에는 실패

디아길레프가 좋아해 1927년 마신의 안무로 다시 무대화함





Onegin 오네긴

크랑코 안무로 1965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초연.3막 6장.음악 차이코프스키

푸쉬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틱 발레.순진한 처녀 '타티아나'가 바람둥이 '오네긴'을

사랑하면서 겪는 갈들이 줄거리이다





The Sleeping Beauty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프티파 안무로 1890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3막 5장.음악 차이코프스키

세례식에 초대 받지 못한 마녀 '카라보스'의 저주로 가시에 찔려 긴 잠에 빠진 '오로라'공주가

백 년 후 왕자의 키스로 깨어나 결혼, 행복하게 살았다는 페로의 동화에서 줄거리를 빌린 것으로

프티파가 직접 대본까지 쓴 작품.클래식 발레 중에서도 가장 격식이 엄격한 대작이자,

19세기 발레 중 가장 공연이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클래식 발레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특히 클라이막스읜 결혼식 '그랑 파 드 되'는 클래식 발레의 극치이며 이밖에 '오로라'가 네 명의

왕자로부터 청혼을 받는 '로즈 아다주','파랑새 파 드 되' 등도 유명하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발레리나로는 마곳 폰테인을 들 수 있는데, 영국 '세들러스 웰즈'

발레학교를 거쳐 1935년 데뷔했으며 17살에 영국 로열발레의 프리마 발레리나가 된 이후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비롯한 클래식 발레를 통해 영국 최고의 발레리나로 등극,

영국 발레의 상징으로도 통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었다.

백조의 호수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누레예프와의 전설적인 파트너쉽으로도 유명한데,

현대의 이상적인 발레리나상을 정립한 무용가이다 할지라도 그 역시 사십대에 접어들어서는

하향곡선을 그리기 마련이다.이런 폰테인에게 생각지도 않은 구세주가 나타나 그녀는 제 2의 발레

인생을 개화시켰는데, 그가 바로 1961년 서방세계로 극적인 탈출을 감행한 러시아 출신의 망명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였다. 서방세계가 누레예프에게 자유와 부를 안겨 주었다면,

누레예프는 폰테인이라는 서구의 발레리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준 셈이었다.

마치 관객을 빨아들이기라도 할 듯 야성적인 카리스마와 빛나는 테크닉, 그리고 러시아 발레의

도도한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열아홉 살 연하의 누레예프는 마흔 두 살의 늙은 발레리나

폰테인 속에 잠재해 있던 예술혼을 불러내어 준다. 그 이후 두 사람이 보여준 파트너쉽은 발레계의

전설이 되었다.







Le Spectre de la Rose 장미의 정령

포킨 안무로 1911년 몬테카를로에서 발레 뤼스가 초연.1막.음악 베버

무도회에서 한 송이 장미를 갖고 돌아온 소녀가 의자에 앉아 잠들어 꿈에서 장미의 정령과 함께

춤을 춘다는 동화 같은 내용.초연 당시 '카르사비나'와 '니진스키'가 출연했으며, '니진스키'가

일련의 시손 (Sissonne) 동작을 펼치다 마치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 새처럼 날아 오르는 듯

창문으로 빠져나갈때 보여진 발롱은 오늘날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은 전설이 되었다.





Lost Illusions 잃어버린 환상

자하로프 안무로 1935년 레닌그라드에서 초연.3막 13장.음악 아사피에프

발레리나를 사랑하는 작곡가의 이야기를 다룬 발자크의 소설 '아첨꾼의 영광과 비극'을 원작으로

한 발레이다





Giselle 지젤

장 코랄리와 쥘 페로 공동 안무로 1841년 파리에서 초연.2막.음악 아당.

독일 라인 강변의 포도 수확기를 배경으로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작.시골처녀 '지젤'은 농부로 변장한 '알브레히트' 백작과 사랑에 빠지지만

'지젤'을 짝사랑하던 사냥터지기 '힐라리온'의 폭로로 '알브레히트'가 약혼녀가 있는 귀족임을

알고는 실성해서 죽는다.'지젤'은 죽어서 윌리 (결혼하기 전에 죽은 처녀의 혼령)가 된다.

동료 윌리들은 '지젤'을 찾아 무덤가에 온 '힐라리온'을 연못에 빠뜨려 죽이고 뒤늦게 찾아온

'알브레히트'마저 죽이려 하자 동이 틀 때까지 '알브레히트'를 보호하며 윌리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 춤을 추어 그의 생명을 구해 준다.

이 작품은 카를로타 그리시 (Carlotta Grisi 1819-1899) 의 추종자였던 프랑스의 낭만주의 시인

'테오필 고티에'가 독일 시인 하이네가 쓴 독일 전설에 관한 연구서 '도이칠란드에 관하여'를

읽다가 결혼을 못하고 죽은 처녀 귀신이 윌리가 돼 남자들을 유혹, 죽을때까지 춤을 추도록

만들었다는 내용에서 영감을 얻어 그리시의 사실상 남편이었던 쥘 페로를 부추겨 지젤을

공동 안무하였다. 결국 그리시가 있었기에 '지젤'이 탄생했던 셈이다.

초연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지젤'은 프랑스 작품이며 '백조의 호수'는 러시아 작품이다.

하지만 오늘날 공연되는 버전을 따지면 러시아의 압승이다.왜냐하면 프랑스에서 초연된

쥘 페로와 장 코랄리의 안무는 1868년 이후 자취를 감추었고, 오느날 공연되는 '지젤'의 원전은

마리우스 프티파가 개작, 이를 바탕으로 1911년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가 유렵에 역수출해

선풍을 일으켰던 안무가 바탕이 된 것이다.즉 지금의 '지젤'은 프랑스에서 생산돼 러시아에서

재창조된 것이다.물론 프티파가 원래 프랑스 출신이었던 점을 따지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그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러시아 무용수들과 함께 창조해낸 고전 명작들은

러시아 발레라고 보는것이 정설이다.

'지젤' 은 '백조의 호수'와 공통점이 있는데, 두 작품 모두 발레리나가 한 무대에서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를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지젤은 1막에서는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시골처녀로

등장하지만 2막에서는 사랑의 위해 스스로를 던지는 희생적이며 성숙한 윌리가 된다.

1막에서는 밝고 경쾌한 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유명한 실성 장면(Mad Scene)에서는

드라마틱한 연기력이 필수다.반면 2막에서는 가냘프고 청초하며 만지면 날아가기라도 할 듯이

연약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빠른 회전이나 도약 등이 없이 아다주 일색인데,

흔들림이 없는 정확한 밸런스, 우아한 라인이야말로 하루 이틀의 연습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2막 마지막 부분에서 죽음을 앞둔 '지젤'과 '알브레히트'가 펼치는 이인무(二人舞)중 '지젤'의

목에서 어깨, 기다란 팔로 이어지는 선은 지젤 라인(Giselle Line) 으로 불리며, 이는 발레리나의

우아함을 가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역사상 가장 완벽한 지젤로 평가되는 올가 스페시브체바 (Olga Spessivtseva 1895-1991)

는 사람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발레사를 장식한 기라성 같은 발레리나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인물로 꼽힌다.자그마한 머리,부서질 듯 연약한 상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긴 다리,

발등이 만들어내는 높은 아치, 방금이라도 눈물이 흘러 내릴듯한 커다란 검은 눈을 가진

페르시아풍의 얼굴을 가진 스페시브체바를 러시아의 대표적인 평론가 아킴 볼린스키는

흐느끼는 영혼 (The Weeping Spirit) 이라고 묘사했는데, 이후 이 표현은 스페시브체바를 일컽는

대명사가 되었다.볼셰비키 실력자의 연인이었던 스페시브체바는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자

조국을 떠나 파리 오페라 발레의 발레리나가 되었고 파리의 즐거운 생활로 혁명의 어두운 기억을

잊고 싶어 했던 그녀는 그곳에서 만난 파트너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는 스페시브체바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안식처를 찾지 못했던 스페시브체바는 미국으로 건너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와

인연을 맺지만 혁명의 후유증과 짝사랑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정신분열증을 일으켜

정신병자 수용소에서 고독한 최후를 맞이한다.

'지젤'하면 짚고 넘어가야할 사건 하나가 있다. 니진스키가 1911년 1월 23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 마린스키에서 열린 '지젤'공연 당시 황실극장 무용수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의상을 입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전격 해고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알브레히트 공작 역을 맡은 니진스키는 20세기초 러시아 예술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렉산드르 브노와'가 디자인한 짧은 갈색 튜닉과 몸에 붙는 타이츠를 입고

무대에 등장했다.당시 황실극장의 남성 무용수들은 타이츠 위에 트렁크를 입는 것이 관례였으나

니진스키는 타이츠만 입고 나온 데다 웃도리마저 파격적으로 짧아 그야말로 몸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니진스키가 무대에 등장하자 객석은 술렁거렸고 1막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르'의 사촌인 '안드레이 블라디미로비치'대공이 무대 뒤로 쫓아와서는 황태후가 퇴장해 버릴

것이라며 불호령을 내렸다.호락호락 말을 들을리 없는 니진스키는 2막에서도 의상을 교체하지

않았고 날이 새자 극장으로부터 전격적인 해고 통보를 받은것이다.

당시 개인 발레단을 만들어 유럽에 진출하려고 혈안이 돼 있었던 디아길레프는 엄청난 흥행

잠재력을 지닌 니진스키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지만 황실극장 소속의 톱스타인지라 마음대로

빼낼 수는 없던 터에 니진스키가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극장을 그만두게 되었으니 그 뒷일은

불은 보듯 뻔한게 아니던가.디아길레프는 기다렸다는 듯이 유럽으로 니진스키를 데려가 버렸고

경위야 어찌됐든 이 사건이 디아길레프가 '발레 뤼스'를 창단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발레 뤼스가 몰고 온 20세기 발레사를 뿌리부터 뒤흔든 거센 태풍의 핵은 니진스키였으니

우연한 사건 하나가 발레사의 물줄기를 돌려 놓은 셈이다.





La Giselle Rouge 붉은 지젤

에이프만 안무로 1997년 초연.2막.음악 차이코프스키, 슈니트케, 비제 등

러시아 발레리나 스페시브체바의 운명을 소재로 한 발레로, 혁명이 예술가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





Lady of the Camellias 카멜리아 레이디

노이마이어 안무로 1978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초연.3막.음악 쇼팽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도 유명한 뒤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발레

극적인 표현성이 돋보이는 작품





Cachucha 카추샤

여자 무용수가 캐스터네츠를 들고 추는 우아한 스페인춤.

파니 엘슬러 (Fanny Elssler 1810-1884)가 19세기 중반 직접 재구성해 공연한것이 인기를 끌어

유명해졌으며 그녀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1832년 '라 실피드'로 낭만주의 시대를 연 '탈리오니'가 한마디로 가냘프고 순수한 청순가련형의

표상이라면, '카추샤'의 집시 춤으로 유명한 '엘슬러'는 육감적이고 매력적인 섹스어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을 '천상의 존재'와 '지상의 존재'로 대비시켜 '탈리오니형'과 '엘슬러형'으로

나누고 있으며, 이 밖에도 두 사람을 비교한 표현들은 수없이 많이 남아 있지만 오늘날 가장 널리

인용되는 것을 꼽자면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테오필 고티에'가 탈리오니를

기독교형(Christian goddess type), 엘슬러를 이교도형 (Pagan divinity type) 으로 분류한 것이다.

비평가인 '앙드레 레빈송'은 파니 엘슬러를 두고 '쇼팽의 느린 왈츠 뒤에 오는 리스트의 랩소디'라

하기도 했는데 이때 쇼팽의 느린 왈츠는 다름 아닌 탈리오니를 가리킨다.

이쯤 되고 보니 이 두 사람의 라이벌전은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무대 위 경쟁은 물론이고, 연일 지상 논쟁이 벌어졌으며 팬들 사이에서도 불꽃 튀는 세력 싸움이

있었는데 엘슬러의 극성 팬들이 그의 포인트슈즈에 샴페인을 따라 마시자, 탈리오니의 팬들은

아예 포인트슈즈를 요리해 먹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까지 전해질 정도니 당시 두 사람의

경쟁이 얼마나 불꽃 튀었는지 짐작가게 한다. 낭만발레가 유럽을 휩쓸기 시작한 19세기에는

이 두 발레리나야말로 유행의 원천이요 대중의 우상이었는데, 이같은 인기에 힘입어 발레사상

최초로 큰 돈을 번 발레리나들로 기록되기도 했다.





Pas de Quatre 파 드 카트르

페로 안무로 1845년 런던 '허 마제스티' 극장에서 초연.음악 푸니.

산적들도 흐물흐물하게 만들었던 마리 탈리오니, 육감적인 매력으로 뭇 남성을 설레게 했던

파니 체리토, 지젤 신화의 주인공 카를로타 그리시, 덴마크 출신의 떠오르는 별 루실 그란 등

낭만주의 시대 5대 발레리나 중 엘슬러를 제외한 네명이 한꺼번에 출연했던 세기의 화제작.

일종의 디베르티스망으로 샬롱의 석판화에 모습이 남아 있음.

'허 마제스티'극장의 '벤자민 럼리'극장장의 계획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쥘 페로'에 의해

실행되었는데, 페로는 탈리오니와 한때 파트너로서 무대를 누비는 사이였으며, 그리시는 사실상의

그의 아내였고 체리토는 제자였으며 가장 어린 루실 그란은 본인이 내심 이 프로그램에 끼고

싶어했다.엘슬러는 당시 유럽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을 무대로 맹활약중인데다 탈리오니와의

라이벌전은 그야말로 불꽃이 튀어 두 사람을 한 무대에 세운다는 것은 무모했으며 엘슬러가

이들 네명의 발레리나들과는 개성이 판이하게 다르고 너무 튀었던 이유에 합류시키지 못했다.

이 네명의 발레리나들의 난제인 스케줄 조정이나 이들을 한 데 모으는 수송작전보다 몇 배나

더 어려운 일이 있었으니, 바로 네 명의 대스타들이 벌이는 자존심 싸움을 중재하는 일이었다.

'더 타임스'는 전례가 없었던 사상 최고의 무용의 제전이었으며 이 네 명의 발레리나들이 불꽃

튀는 경쟁심으로 인해 다른 무대에서라면 볼 수 없었을 최고의 에너지와 기량을 발휘했었다고

보도했다.가장 상업적인 목적으로 기획된 이벤트였지만 발레사에 남을 만한 새로운 시도였다.





Parade 퍼레이드

마신 안무로 1917년 파리에서 발레 뤼스가 초연.음악 사티. 대본 콕토.

1914년부터 서커스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던 장 콕토는 사티와 작품을 논의하게

되었고, 1916년 8월 피카소가 합류하였는데 콕토의 구상에 피카소의 재치와 창의성이 더해지자

작품은 급진전하게 되었다.피카소는 무대세트와 함께 의상까지 담당했는데, 일부 화가들의

볼멘 소리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전위 예술가들은 작품에 열광했으며 타이프라이터 소리,총소리

비행기 엔진 소리 등이 뒤섞인 사티의 충격적인 음악도 스트라빈스키는, '신선하고 참된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있다'며 발레 뤼스의 편을 들었다.

안무를 맡은 레오니드 마신(Leonide Massine 1895-1979)역시 사실적인 못짓을 기초로 하여

기존의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새로운 안무를 시도했다.공연이 끝나고 평론가의 원색적인 비판에

격분한 사티는 욕설을 퍼부었는데, 명예훼손으로 고발되어 콕토는 당시 증인으로 재판에 불려

나가고, 사티는 일주일간의 금고형을, 콕토는 변호사에게 육체적인 위협을 가했다는 죄로 벌금형을

받는 등 스캔들 투성이었다.각종 진기록을 낳은 이 작품은 예술사에 하나의 새로운 개념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초현실주의 (Surrealism)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한편 피카소는 이 작품을 계기로 후에 여덟 개의 발레작품에 무대미술로 참가했는데

'퍼레이드'에 참여할 당시 발레 뤼스의 발레리나였던 올가 코클로바(Olga Koklova)를 쫓아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후에 그의 부인이 된 코클로바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Paquita 파키타

마질리에 안무로 1846년 파리에서 초연됐으나 1847년 프티파가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건너가 첫

작품으로 무대에 올린 새 버전이 널리 공연됨. 나폴레옹 점령하의 스페인이 배경으로,

한 집시여인이 프랑스 군인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을 인연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 후에 이 여인이

원래 귀족 출신이었음이 밝혀져 결혼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





Petrushka 페트루슈카

포킨 안무로 1911년 파리에서 발레 뤼스가 초연.4경(景).음악 스트라빈스키.

러시아의 전통 축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곡두각시 인형 페트루슈카의 슬픈 사랑 이야기

인간의 마음을 지닌 페트루슈카는 발레리나를 짝사랑하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연적 (戀敵)으로부터 죽임을 당한다는 줄거리이다.

러시아의 전통 꼭두각시 인형 이름을 제목으로 한 '페트루슈카'는 마치 니진스키의 분신 같은

배역이었다.실제로 포킨은 페트루슈카의 이미지를 창조하면서 니진스키의 특이한 평소 행태를

원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무감동한 표정, 기계 같은 제스처, 어색한 매너 등이 그것이다.

발레리나를 사랑하다 죽임을 당하는 페트루슈카 역을 맡은 니진스키는 페트루슈카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의 비극적인 눈은 원천적으로 꼭두각시 인형의 슬픈 감정을 담고 있었다.

니진스키의 삶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은 이후 눈물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형이 추락사고의 후유증으로 백치가 된 후 아버지는 더 이상 가족을 돌보지 않았고, 어머니가

세 남매를 부양했지만 생활은 굶기가 다반사일 정도로 어려웠다. 마린스키 극장에 들어간 뒤에도

그는 늘 경제적인 문제에 시달렸다.그의 심연에 켜켜이 쌓여 있던 슬픔과 억누른 정열이

페트루슈카의 슬픈 눈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던 것이다.





The Mutcracker 호두까기 인형

이바노프 안무로 1892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2막 3장.음악 차이코프스키

크리스마스 이브에 대부로부터 호두가기 인형을 선물 받은 '클라라'가 꿈속에서 왕자로 변한

인형과 함께 생쥐 군대를 물리치고 과자 왕국을 여행하는 이야기.크리스마스 단골 레퍼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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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작품  
chacottkorea
2007/08/18 7064